『'터널효과', 지방도시를 해체하는 KTX 등의 고속 이동수단의 발전』'텅 빈 도시 : 쇠퇴에 대한 새로운 해석'(책 소개)

안녕하세요, 소공소곤입니다. 

 

최근에 프랑스 지방 중소도시들의 재생사업에 대한 비판과 고찰을 담은 부동산 서적 「텅 빈 도시 : 쇠퇴에 대한 새로운 해석」(필립 레에)을 읽었습니다. 

쇠퇴하는 중소도시들은 새로운 전환을 꿈꾸며 관광 산업을 육성하고 있으나, 저자는 인기 관광지로의 발전은 ‘환상’에 가까운 극소수의 성공사례라고 말한다. 또한, 관광 혹은 경제적 투자유치를 위해 지역 이미지와 브랜딩과 같은 ‘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으나, 저자는 수많은 도시에서 실체가 없는 소속감, 정체성과 자부심을 부추기는 슬로건들이 난무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지방정치인들이 주민에게 강조할 것은 지역에서의 삶에 대한 신뢰와 존엄성이지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자부심’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게다가, 지방 도시들은 하나같이 고속도로, 고속철도 등 ‘초고속 연결성’을 꿈꾸며 지역에 이러한 교통인프라가 들어오기를 기대하지만, 저자는 교통인프라가 오히려 위험요소(고속인프라로 인해 텅 빈 도시는 한낱 스쳐 지나가는 정차 지점이 되어버리는)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에 저자는 느림의 미학을 강조하고 대안적 방식으로 머물고 즐기는 장소를 만들도록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텅 빈 도시(쇠퇴하는 도시)의 나아갈 방향 
이은지 서울시립대학교 상생협력센터 책임연구원 / 국토연구원 <월간 국토 10월호> 내용 中 발췌 

'저처럼 프랑스 국내 상황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한 경우'에는 굉장히 읽기 어렵게 느껴지는 학술서이기 때문에 직접 읽어보시라고 추천드리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프랑스 지방 도시들의 이름과 그와 관련된 통계 수치로만 책의 절반을 채우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고찰을 담은 부분들 위주로 스킵하면서 읽게 되더라고요. 

 

다만 통계적인 접근으로 객관적인 근거 제시를 통해 '우리가 쇠퇴하는 중소도시를 과연 현실적으로 살려낼 수 있을까?', '환상에 젖은 정치적 구호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비판하며, '이제는 부흥과 쇠퇴를 대체할 수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하는 철학적인 주장은 신선하기도 하고 공감 가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국토 균형발전이다, 인구감소다, 지방 소멸이다 해서 많은 지원 정책 및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지만 그 성공 여부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 존재하는 만큼 한번 여러 의견을 종합해서 미래 비전에 방향을 재정립할 필요성도 있어 보입니다. 관련된 연구들이 자주 눈에 띄는 요즈음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다양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해 보네요. 

 

술술 읽히는 내용은 아니어서 기대보다는 약간 지루하시겠지만, 그래도 위에 책 소개에 흥미를 끄는 요소가 있으셨다면 한 번쯤 빌려서 읽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표현 중에 '터널 효과'*라고 하는 것을 재미 삼아 소개해 드리고 갈까 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터널 등의 개통(혹은 고속 이동수단의 연결)으로 인해 핵심지역 간 이동시간의 단축 및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면서 생활권이 통합되고, 그로 인해 부동산의 가치가 크게 상승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가끔씩 사용되는데요. 본 책에서는 이것과는 다른 부정적인 의미로서 '터널 효과'를 소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사정이 동일하지 않을 수 있음을 감안하고 구분해서 참고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터널 효과'를 "축을 따라 신속하게 이동하는 교통수단이 마련되면서 중간의 매개지점이 제거되고 결국 네트워크 내 진입구의 부재 혹은 부족해지는 현상"으로 소개합니다. 이것은 저자 혼자만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고 프랑스 내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용어입니다. 

 

여기서는 '고속의 교통축 상에 있는 두 개의 진입부 사이(두 개의 고속철도역 혹은 고속도로ic 사이)에 있는 공간들은 특별한 전략 없이는 누구나 꺼려하는 단순한 통과 공간, 환승 공간으로 전락할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1세기에는 아름다움을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오직 미리 지정된 곳 무엇보다 수익을 올릴만한 기능이 배치된 곳에서만 볼 수 있다. 관광 행선지에 대한 수요는 이미 충족되었으므로 현재의 관광개발 프로그램은 공화국 운영을 위한 필수적 기능이라기보다, 본연의 기능을 잃고 미래 기능에 대한 전망도 어두워져 갈데없이 취약한 지역에 '공평성'이라는 명목 아래 버팀목을 제공하겠다는 의지에 더 잘 부합하고 있다. 이제 에너지 및 산소의 생산, 연결회랑 등의 기술적 기능들은 텅 빈 지역에 대한 접근법 중 국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접근법이라 할 수 있으며, 이들은 주요 고찰 대상들을 인간의 신체로 비유할 때 기능주의 관점에서 '동맥'이라 불릴 수 있는 대상들이다. 목표는 극히 명확하다. 국토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텅 빈 지역을 그대로 통과하여 충만한 지역들 사이를 최대한 빠르고 원활하게 연결하는 것이므로, 혈관의 색전증 위험 즉 기능 간 연결을 늦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그 어떤 경우에도 중간지대 공간들에 활력을 다시 불러일으킬 계획은 없다.

「텅 빈 도시 : 쇠퇴에 대한 새로운 해석」, p190

즉 고속 교통수단의 발전은 특정 지역들을 보다 빠르고 원활하게 연결시켜주는데 도움을 주지만, 그 자체가 지방 도시를 되살려주기 위한 목적에 근거해 있다고 볼 수 없다. 

 

교통노선이 지나는 지역들이 거점화되지 않고 단지 기술적인 연결 공간으로만 운영될 경우, 통과하는 구간들은 무미건조하고 머리에 남지 않으며 이 공간들을 빠르게 지나고 싶어 할 뿐입니다. 

 

예를 들면 제가 있는 평택에도 지제역과 안중역이라고 시민들의 기대가 매우 큰 철도역들이 있지만, 전국 단위로 보면 광역철도를 타고 지제역과 안중역을 잠시 지나쳐 가는 사람들이 이곳이 과연 평택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역명을 '평택지제역' '평택안중역'으로 정해서 도시 브랜드를 키워 나갈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역과 역 사이의 공간은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인해 더욱더 가깝고 좁게 압축되고 있으며, 그 텅 빈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곳은 그냥 스쳐가는 찰나의 기억밖에 제공할 수 없게 됩니다. 

 

아래에서도 다른 예시를 말씀드리겠지만 지방 도시에 아무 의미 없이 도시개발사업하고, 멋있는 단지를 만들고 그럴듯한 관광 상품 몇 개 만들어 봤자 그런 걸로 다른 도시와의 차별점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지역민들에게 제공되는 편의에 불과한 것이지(책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근거 없는 자존감이 도시 쇠퇴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요소라고 지적합니다), 지방을 떠나는 젊은이들을 막을 수도 없고 타지의 사람들이 방문 싶어 할 만한 매력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에 그냥 허울 좋게 소멸의 길로 들어설 뿐입니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초고속은 경제개발과 지역성장의 필수조건으로 여전히 부각되고 있지만, '정치인들 사이에서 고속도로의 유익한 효과는 종종 과학적 확신보다는 거의 마법의 주문 같은 발언에 가깝다'라는 지적은 결코 가볍지 않은데요. 우리나라에서도 광역철도에 대한 지나친 신화를 만들어 내고 막대한 홍보를 쏟는 것은 어쩌면 지방 정치인들의 선거 프로그램과 쇼맨쉽의 향연으로 소비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고속도로는 종전까지 교통이 불편하던 지대에 있던 시설들의 이주 프로세스를 작동・가속화시키고, 도로 주변으로 집중하여 성장하던 마을 경제를 무너뜨리며, 전통적인 국도 인근 지역에도 부정적인 소요를 발생시키는 것이 프랑스 지방 도시들에서 확인되는 역사적(통계적) 사실이라고 합니다. 

 

고속 교통수단의 발전은 결코 지방 도시들에게 긍정적인 요소로만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7~8가지를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데요. 원활함을 위해 초고속교통은 정차지점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중간 휴식지인 도시들은 생존을 위해 느린 속도를 요구해야 하고, 그저 이동만을 의미하던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서두르지 않으려는 의지와 지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몇 시인지 확인한 뒤 우리가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리고 인생의 모든 순간이, 심지어 아무것도 없는 순간과 다시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순간들마저 살만하다는 사실을 깨다는 것"은 "기분 좋을 일이다" - 장 지오노(Jean Giono)

제가 정말 재밌게 시청하고 있는 유현준 교수님의 유튜브에서도 마침 이 책에서 소개하는 '터널 효과'와 궤를 같이 하는 주장을 말씀하신 적이 있어서 관련 영상 링크 첨부하고, 그 내용을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KTX의 발전이 지방 도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설명하시고 있기 때문에 보다 쉽게 와닿는 부분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지방에다가 뭔가 새로운 도시를 많이 만들었는데 그것들이 제대로 성공을 못하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KTX가 발달했기 때문이에요. KTX가 발달하면 시간 거리가 단축이 되잖아요. 그러면 공간이 압축되는 효과가 생깁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중앙집중화가 가속되는 거예요. 그니까 우리가 지방 균형 발전을 하려고 했던 많은 노력들이 있는데. 그 노력과 시간 거리를 단축하는 노력들은 사실은 상충되면서 많은 것들이 중앙으로 흡수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겨나는 거죠."

"서울과 똑같이 만들수록 서울의 짝퉁밖에 안 되는 거죠. 거기에 있는 인구들이 오히려 서울로 오기 편안한 교통수단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수도권에 집중이 더 가속화될 것이고요."


-유현준 교수님, 유튜브 채널 '셜록현준'  「한국 도시들 이대로 괜찮은 걸까?」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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