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비용(Sunk Cost)의 오류』과거에 대한 집착과 비합리적인 선택

안녕하세요, 소공소곤입니다. 

 

오늘은 경제학에서 '이미 지불하여 회수가 불가능한 비용'을 뜻하는 『매몰비용(혹은 매몰원가, Sunk Cost)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기본적인 경제학 이론들은 '인간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전제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불안정한 생물이고, 때로는 비합리적인 행동을 취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경제학에서는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한 연구들도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매몰비용' 또한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요소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이 더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인가를 판단할 때, 과거의 투자했던 자금이나 노력 등이 아니라 앞으로의 전망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10만 원에 산 주식이라도, 현재 9만 원까지 주가가 떨어졌고 향후 반등이 여지없이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지는 경우라면 우리는 더 큰 손해를 막기 위해 매도 타이밍을 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과거의 비용인 '매수단가'에 사로잡혀 '이 이하로는 절대 팔 수 없다'라며 스스로 피해를 더 키우게 됩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행동경제학의 권위자, 리처드 세일러에 의해 주장된 '매몰비용의 오류'(The Sunk Cost Fallacy)는 이미 지불된 비용에 대한 미련/집착으로 실패할 것으로 예상되는(혹은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은) 일에 시간, 노력, 돈을 투자하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선택에 주목합니다. 

 

'매몰비용의 오류'의 가장 유명한 예시라고 한다면, '지루한 영화를 계속해서 관람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러닝 타임 2시간의 영화 티켓을 15,000원에 구입했다고 칩니다. 영화관에 입장하고 관람을 시작하죠. 그런데 상영 10분 정도 지난 시점에서 '이 영화는 나에게는 맞지 않고 계속 봐도 재미가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①계속해서 영화를 관람할 것인가 ②도중에 영화관을 나와 남은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할 방법을 찾을까라는 선택지가 등장하게 됩니다. 

①번을 선택하면 티켓값 15,000원과 상영 시간 2시간을 모두 잃게 됩니다.
②번을 선택하면 티켓값 15,000원과 상영 시작부터 퇴실까지의 10분을 잃게 되지만 남은 1시간 50분은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능성 낮은 변수들은 고려하지 않음)

이 경우 티켓값 15,000원과 영화가 재미없다고 느꼈을 때까지의 10분이 매몰비용에 해당합니다. 이 매몰비용은 선택지 ①번과 ②번,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절대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입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 이미 회수 불가능한 15,000원은 판단기준에서 제외하고, 이후 영화가 재밌어질 확률 vs 관람을 그만두었을 경우 얻게 되는 1시간 50분이라는 시간의 가치를 비교하는 것이 경제적 의사 결정 측면에서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아마 '돈이 아까워서 끝까지 봤다'라는 관람평을 남기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시나 갑자기 재밌어질까 봐 끝까지 봤다'라면 다른 이야기겠지만요.)

인간은 내가 이미 투자한 비용에 대한 손실을 두려워하고, 현상을 유지하려고 하는 편향을 자주 갖습니다. 

예전에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에서도 언급이 되었지만, 인간은 얻게 되는 것보다 손해 보는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손실 회피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향은 이미 매몰되어 버린 비용을 마치 내가 새로운 판단을 하는 데 사용되는 기회비용이라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면 내가 사법시험에 도전하기 위하여 연봉 5,000만 원짜리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에 매진할 수도 있습니다. 꽤나 큰 기회비용이 필요했지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도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1년 더 공부를 해야 할까?'라고 고민하는 시점이 왔을 때 우리는 이러한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내가 연봉 5,000만 원을 2년 동안 포기하고 공부만 했는데, 이제 와서 포기하는 것은 1억 원이라는 손해를 안게 되는 거야'라고 말이죠. 하지만 1억 원이라는 기회비용은 내가 공부를 더하기로 마음 먹든, 그만 두기로 결정하든 이미 회수가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새로운 계획과 의사결정에서는 전혀 고려할 대상이 아닙니다. 합격할 자신이 없다고 그러면 그 순간 그만두어야 합리적인 판단이겠지만, 점점 누적되는 아픔을 회피하기 위해 잘못된 판단을 하여 결과적으로 더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들이 수시로 발생합니다.

 

이미 투자한 시간과 돈, 열정 때문에 한 치 앞도 못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지불한 과거의 비용(노력)들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버리고, 지금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이 무엇인가를 따져보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 그리고 이러한 '매몰비용의 오류'는 기업과 국가의 운영에 있어서도 얼마든지 목도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예산이 투입된 프로젝트가 시장에서 외면당했지만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30년간 자존심을 굳히지 않았던 영국과 프랑스의 '콩코드 여객기 사업 실패'의 대표적인 예도 존재합니다. 

 

수없이 많은 사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규모가 커질수록 고려해야 하는 변수들도 워낙에 다양하기 때문에 아무리 고심하였다고 하더라도 완벽한 전략이나 정책은 존재하기가 힘들고, 매몰비용들은 계속해서 쌓여만 갑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과 국가에서도 변화무쌍한 세상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현실과 대화하는 동시에 과거의 영광을 잊기 위해서 끊임없이 스스로 채찍질해야 합니다. 


즐겨하던 게임이 갑자기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멍하니 마우스 클릭할 일 없이 당장 더 생산적인 일을 즐기면 되고, 잘못된 투자를 했다면 일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새로운 투자 계획을 세울 줄 알아야 하고, 정책이 잘못됐다면 혈세를 낭비했다고 비판받고 평판에 금이 가더라도 국민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인해 현재의 삶이 희생되며, 미래가 발목 잡혀선 안 된다는 게 '매몰비용'이 가르쳐 주는 진정한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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