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치한 연말이네요, 고독함과 부질없는 추억을 소환하는 하루키..

역시 연말에는 ㅈㄴ센치해진다. 괜스레 옛 추억을 소환하여 부질없는 감정을 되새김질하는 주옥같은 시즌의 반복이다. 올해도 외롭고, 고독하고, 옛 인연을 그려 내며 또다시 후회하고 이기적으로 미안한 척하며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한다. 

 

올해의 마지막 한 칸을 남기고 시작된 크리스마스 연휴의 한가운데에서 오랜만에 책을 집어 들고 창가에 앉았다.

 

이내 모두가 사라져 버린 마을의 고요함이 내 마음속의 작은 고동을 크게 울리고, 잦아들지 않는 떨림을 숨기고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해서 듣는 노래가사를 애써 크게 키워 본다. 

 

※요새 태연이라는 가수에 빠져 있는데, 오늘만 Gravity 100번 들은 듯

 

시리게 움츠러드는 마음을 달래주듯 따스한 햇빛이 책장 속에 내 그림자를 드리우고, 눈이 부시는 반가움으로 자리를 고쳐 앉는다. 

 

가느다란 실타래처럼 이어진 서로의 온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다들 그렇게 서둘러서 어디로 간 걸까?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서 나의 소중한 일상을 함께 채워줄 수는 없는 걸까? 

 

나 홀로 쌓아 올린 불확신한 거대한 벽 안에는 아무도 실재하지 않지만 이 자리를 외로이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스스로 무엇이 가짜이고, 진짜인지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안기고 사랑스런 온기를 느끼고 싶다고 간절히 애원하고, 갈구할수록 내 온전한 세상이 무너지지 않게끔 더욱 수동적으로 꿈을 물들여 간다. 주변 상황에 맞춰서 끊임없이 새로운 바람들을 기대하지만 결국에 남는 것은 헛된 공허 뿐이다. 


 

하루키라는 브랜드만 믿고 아무런 정보 없이 구매한 책을 오랜 방치 끝에 읽기 시작했다. 이제 막 3분의 1을 읽은 시점에서 나의 센치한 기분을 건드리는 요소들이 나의 호기심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나뒹굴고 있는 책들 속에서 정말 절묘한 타이밍에 잘 꺼내들었다 싶을 정도로 감정이입 최고조로 재밌게 읽는 중이다. 두 개의 시점을 수시로 전환하며 전개되다 보니 약간 피곤함도 있지만, 사람이 그리우신 분들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너무 공감가여 사진까지 찍어서 몇 번씩이고 다시 읽은 구절들이 있는데, 그 중 일부만을 아래에 옮겨 놓았다.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이구나!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저와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다.

 

※본인은 300페이지 미만의 책들은 절대 구매하지 않는다는 소신을 갖고 있지만 본 작품은 다행히 670페이지 정도 된다. 그러니 추억을 천천히 곱씹으며 여유롭게 연말의 한가로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애초에 한가하지 않은 것도 참 부러운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1부 내용 중에서 / 街とその不確かな壁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불합리할 만큼 갑자기 사라지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얼마나 격렬하게 당신의 마음을 쥐어짜고 깊숙이 찢어놓는지, 당신의 몸안에 얼마나 많은 피를 흐르게 하는지 상상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사무치는 건 자신이 온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이다. 자신이 손톱만큼의 가치도 없는 인간 같다는 느낌이다. 무의미한 종이 나부랑이, 혹은 투명인간이 된 듯한 느낌이다. 손바닥을 펼치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점점 건너편이 비쳐 보인다. 

 

당신은 논리적이고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원한다. 그 무엇보다 필요로 한다. 그러나 아무도 당신에게 그것을 건네주지 않는다. 아무도 당신에게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지 않는다. 아무도 당신을 위로하거나 격려하지 않는다. 당신은 황량한 땅에 홀로 남겨졌다. 눈길 닿는 곳 어디에도 초목 한 그루 없다. 그곳에서는 세찬 바람이 늘 한 방향으로만 분다. 피부를 찌르는 미소한 바늘을 품은 바람이다. 당신은 온기를 띤 세계에서 가차 없이 배제당하고 고립되었다. 갈 곳 없는 마음을 납덩이처럼 가슴에 끌어안은 채.

 

그녀에게서 무슨 연락이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당신은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아니, 어차피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없다. 전화벨은 울리지 않고, 우편함에 두툼한 봉투가 꽂히지도 않는다. 문 두드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있는 것은 오로지 침묵, 그리고 무다. 그리하여 '침묵'과 '무'가 당신의 가까운 친구가 된다. 가능하면 그다지 친구가 되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곁에 함께해 주는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당신은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무거운 둔기를 닮은 침묵과 무 앞에서 희망이라는 존재의 그림자는 옅다.


매일 먹을 음식을 직접 만들고, 헬스장에 가서 건강을 챙기고, 일상을 청결히 유지하고, 남은 시간에는 책을 읽는다. 독신 생활에는 규칙성을 중시하는 것이 제일이다 - 규칙성과 단조로움 사이에 선을 긋기가 가끔 어렵다 해도. 

 

주위에는 내 생활이 자유롭고 속 편하게 비쳤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나는 그 자유를, 일상의 평온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는 나라는 인간이 어찌어찌 감당할 수 있는 유의 삶이지, 다른 이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삶이었을 것이다. 너무 단조롭고, 너무 고요하고, 무엇보다 고독했으므로.

 

.... 하지만 너는 없다. 네가 어디 있는지 알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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