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 이야기①』원룸, 1K, 코인란도리, 트렁크룸 등

안녕하세요, 소공소곤입니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일본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제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8년이라는 시간을 건너가 지냈었기 때문에 새해가 되면 한 번씩 그때의 추억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재밌을까 고민해 보다가, 일본 집 이야기를 얄팍한 지식에 경험을 살짝 더해 두서없이 가볍게 털어볼까 합니다.

 

일본은 유학생들(워홀러x)의 아르바이트 시간을 일주일에 28시간 이내로 제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알바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대!'라는 소문은 사실 유학생들에게는 해당되기 쉽지 않은 내용입니다. (물론 제대로 고용신고를 안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제대로 된 일본 업체보다는 많은 시간을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찾는 경우가 흔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가끔씩 투잡 당일치기 같은 느낌으로 한국분이 운영하시는 이사업체에서 1년 정도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 그런 기회로 평소에는 구경하기 힘든 정말 많은 집들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1t 트럭 반도 채우기 힘든 짐들을 싣고) 유학생들의 집을 수없이 다니면서 '이런 지역을 선호하시는 분들도 있구나, 생각보다 다양한 지역에 유학생들이 분포되어 있네'라고 느낀 적도 있고, 수십 년씩 살고 계신 교포분들의 낡은 집들을 보며 세월의 흔적과 무게를 느끼고, 대기업 임원분들이나 오사카 영사님이 실제로 사시던 곳, 야구선수 이대호 선수를 포함하여 프로스포츠 외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고베의 고급 맨션 등을 구경하며 일본 생활의 꿈을 키워보기도 했었습니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고요.. 

일단 제 경험은 오사카 쪽 기준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감안해 주시고, 주저리주저리 시작해 보겠습니다.

 

일본도 한국과 같은 아파트 단지가 없지는 않으나 쉽게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단독주택 혹은 맨션이라고 부르는 한동짜리 공동주택(아파트)들 위주로 주거환경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택임대 시장이 굉장히 잘 발달되어 있죠. 한국의 경우에는 저층의 다가구/다세대 주택이나 오피스텔 정도에서 어플을 통해 월세를 구할 수 있지만, 일본의 경우 도심 속 지나치는 거의 모든 건물(주택)에서 월세 물건을 구할 수 있습니다. 단독 주택(一戸建て)이 아니라면 굳이 대출받아서 분양받는 것보다 월세를 내면서 사는 것이 오히려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대 목적의 주택들이 많이 있고, 관련 서비스들이 많이 발전되어 왔습니다. 

 

정말 다양한 조건들의 임대 물건들이 나와 있어 사이트에서 도면들 구경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평균적인 면적은 그렇게 크게 나오지 않습니다. 한국의 원룸들과 비슷한 크기, 15~30㎡ 정도가 전체 매물의 2/3 정도를 차지합니다. 

 

일본에서는 일단 원룸이라는 구조는 생각보다 크게 선호되지 않습니다. 월세 가격대를 낮추면 원룸의 비율이 확연히 늘어나지만, 기본적으로 주방(+욕실)과 방이 구분되는 1K라는 구조가 베이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래의 그림에서 가운데 문이 사라지면 원룸이 되지만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큽니다. 

전형적인 1K 구조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방의 면적을 1帖(畳) = 1.6529㎡*의 단위로 계산을 하는데요. 일본식 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畳(다다미) 한 첩의 크기가 910mm x 1820mm인 것에서 고유 면적 단위를 만들어서 쓰고 있습니다. 방 하나에 6~8畳가 흔히 볼 수 있는 크기이고, 6畳가 대략 10㎡인 것을 감안하여 방 전체의 전용면적을 유추해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가 흔히 '평'이라고 부르는 면적표기방식은 환산하면 3.3058㎡으로, 다다미 두 첩을 놓은 것과 동일한 면적입니다. 이는 일제의 잔재 표현으로 현재는 제곱미터(㎡)를 법정단위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평, 평방미터, 헤베 같은 표현으로 표기 시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주의하실 점은 그림에 같은 6畳라고 적혀 있어도 원룸의 경우는 주방의 면적이 포함된 크기이고, 1K의 경우에는 방만 따로 계산한 전용면적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면적을 계산하면 꽤나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참고로 유학생 레벨에서 구할 수 있는 평균적인 원룸, 1K의 크기는 20㎡ 전후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집들이 유학생들을 위해서 지어진 집들은 아니니, 당연히 일본의 젊은 사회인들 상당수도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생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좌)일본 전통식 바닥재, 다다미 / (우) 현관에서 보이는 1K의 일반적인 복도 모습

좁은 복도에 서서 요리를 하고 바로 뒤에는 욕실과 화장실이 있습니다. (욕실과 화장실이 구분되는 것이 더 좋은 옵션)

 

그리고 이 복도라는 개념이 일본의 모든 주거 형식의 기본이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방 구조가 커질수록 복도가 DK라는 개념으로 바뀌는 경우는 있어도, 현관을 들어오면 나오는 복도(혹은 DK)에 화장실+욕실이 위치한다는 것이 가장 흔한 전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복도를 중심으로 구조가 설계되고, 신축 고급 맨션의 경우에도 안방에서 바로 욕실이 이어지는 경우보다 복도를 통해 욕실로 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아마도 매일 저녁 온 가족이 돌아가며 욕조에 몸을 담그는 일본의 입욕 문화에서 욕실이 갖는 중요성에서 비롯된 주거형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3SK 구조. 좁은 복도에서 연결되는 문만 3개가 있다


19년 말 기준으로 일본의 1인 가구는 1490만 7,000세대로 전체의 28.8%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약 60%가 원룸+1K 구조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원룸, 약 15% / 1K, 약 45% / 거기에 1DK를 포함하면 70% 이상 / 표본은 작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대략 15~30㎡ 정도의 공간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흔한 사회입니다. 여기서 상대적으로 면적이 작게 나오는 집들 중에는 세탁기를 놓을 공간이 구조적으로 아예 마련되어 있지 않은 곳도 존재합니다. 그 대신에 맨션 안에 공용 코인란도리(コインランドリー, 코인 세탁방)가 설치되어 있거나 합니다. 

 

일본에서는 풀옵션 계약이라거나 하는 것은 레오팔레스21 정도가 아니라면 그렇게 흔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세탁기를 새로 구입하고 1년간 수도세 등을 포함하여 4~5만 엔을 추가로 투자하는 것보다 빨래를 모아서 며칠에 한 번씩 코인란도리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라고 느끼는 분들이 계십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에서 세탁을 하고 빨래를 널고 하는 것이 별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선호되지 않는 발상이긴 합니다. 

공용 코인란도리가 설치되어 있는 건물들

맨션 내 공용 코인란도리가 아니더라도 동네에는 반드시 코인란도리가 하나씩은 있습니다. 편의점 강국 일본에서 가장 많은 점포를 전개하고 있는 세븐일레븐과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의 코인란도리 점포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상기에서 말씀드린 이유 등으로 상대적으로 빈곤한 층이나 독신 남성들의 코인란도리 이용률이 아무래도 높았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도 약간 어두운 이미지가 공존하는 장소였지만, 최근에는 워낙에 시설들이 깔끔하고 편의/접근성이 좋아져서 사업이 더욱 확장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기다리는 시간 등을 고려해야 되기 때문에 몰아서 한 번 들린다거나 이불 등을 세탁하기 위해서 분기에 한두 번씩 들린다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때 건조기만 이용한다거나 하는 식이 많지만 일본 특유의 주거 환경을 뒷받침하는데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의 코인란도리 시설


일본 내에는 코인란도리와 비슷하게 부족한 주거 환경을 보조해 주며 인기를 얻고 있는 사업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트렁크 룸(トランクルーム)입니다.

 

작년 기준으로 트렁크 룸 시장이 10,000 점포(약 478,000실)를 넘겼다고 합니다. 지금 기준으로 코인란도리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점포 수이고, 08년도와 비교하면 2.4배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코인란도리 바로 옆에 꽤나 큰 트렁크 룸이 있어서 '저기는 진짜 짐을 맡기는 곳일까?' 궁금해하던 적이 있었는데요. '네, 24시간 언제라도 편하게 개인 창고처럼 짐을 자유롭게 보관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 한국에서는 '셀프 스토리지'라는 표현을 쓰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트럼크 룸 예시
트럼크 룸 예시

다양한 크기와 조건이 존재하고, 컨테이너 식 말고 도심에서도 호실별로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접근성 측면에서는 코인란도리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보셔도 됩니다. 저는 실제로 이용해 본 적이 없지만 쓰는 분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능합니다. 

 

주거 면적이 작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짐을 따로 보관할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습니다. 유학생들 경우라면 그나마 짐을 불리지 않는 절제된 생활이 가능하지만, 자리 잡고 살고 있는 일본인들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취미도 즐겨야 하고, 자연스럽게 짐이 늘어만 갑니다. 예를 들어 캠핑 장비라도 하나 들여놓으려고 하면 굉장히 고민이 될 겁니다. 평소에 사용하는 빈도는 높지 않지만 큰 부피를 차지하기 때문이죠.

 

저렇게 조그만 공간을 돈을 내고 빌려 쓴다고? 의아해하거나, 저거 빌릴 돈으로 월세 조금 더 주고 더 큰 집으로 이사 가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나마 현실적인 1K의 인테리어

옷가지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위에 사진 정도가 그나마 현실적으로 가장 깔끔한 인테리어입니다. 막말로 여기에 선풍기만 하나 추가해도 동선이 꼬이는 상황이 발생하고, 딱히 어디에 숨겨서 보관할 곳도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외곽 구축에 살아서 상대적으로 넓은 집(40㎡)에 살았는데도 어쩌다 보니 보조 냉장고랑 사이클링 기구(?) 같은 것들을 공짜로 얻었더니 도저히 움직일 공간이 없더군요. 그래서 베란다 내다 놓으면 녹슬고 버리려고 해도 돈이 꽤 들고.. 

 

스키&스노보드&스노쿨링&캠핑 장비, 계절용품&옷가지&여행가방, 가구 등등 집에서 쓸데없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용품들은 셀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버리고 필요할 때 다시 살 수 있는 것들도 아니죠. 그래서 추가적으로 나만의 창고를 가지고 싶다는 욕구가 발생하고, 언제라도 들릴 수 있는 입지에 그런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면 충분히 메리트가 있습니다. 

 

거기에 전근이나 장기 출장을 가야 하는 경우에는 방을 비우고 짐을 트렁크 룸에 맡기는 것이 훨씬 저렴한 경우도 발생합니다. 

 

트렁크 룸의 이용료는 지역별&조건별로 차이가 심하게 나기 때문에 따로 정리하지는 않겠지만, 일반적으로 1K 방의 월세를 임대 면적당 단가로 나눴을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빌릴 수 있다고 합니다. 1K의 방이 평당 1만 엔 정도로 임대가 이루어지는 지역이라면 트렁크 룸도 한 평을 대략 1만 엔에 정도에 빌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평단가로만 보면 트렁크 룸을 빌리는 것과 조금 더 넓은 집을 빌리는 것이 동일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트렁크 룸은 천장 빼곡히 짐들을 보관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이기 때문에 인테리어 신경 안 쓰고 훨씬 효율적인 짐 보관이 가능합니다. 또한 월세가 높은 경우에는 임차 시 내는 보증금이 높아지고, 짐이 적어졌다고 해서 중도에 방 계약을 자유롭게 해지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오늘은 일본의 주거 환경의 특징에 대해서 가볍게 살펴보고, 이것과 연관한 코인란도리, 트렁크 룸 등의 서비스 산업이 왜 인기를 누릴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해서 말씀드려 봤습니다. 

 

1인 가구가 늘어가고, 그에 따른 소규모 주택이 보편화되어 갈 한국의 미래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생각되네요. (한국 정서에는 잘 맞지 않는 부분들이 크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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