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가 일본유학을 결심하게 됐던 계기.. ③
- 【나만의 이야기】/일본 이야기
- 2019. 12. 9.
안녕하세요. 여태까지 제가 일본이라는 나라에 어쩌다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어떻게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왔습니다(그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밑에 관련 포스팅을 참고해 주세요~). 오늘은 제가 군 전역 후에 어떠한 경험들을 통해서 일본 유학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해요.
【관련 포스팅】 내가 일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①
【관련 포스팅】 내가 일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②
군대 제대 후에 누나가 전역선물이라고 돈을 많이 보태 줘서 같이 일본 도쿄로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 첫 일본 여행이었죠. 누나도 제가 일본어 자격증(JLPT 1급)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제게 통역과 안내를 맡기면서 편하게 다니고 싶은 심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만해도 자격증만 가지고 있었지(사실 특별히 공부를 한 기억도 없는데 어떻게 합격했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실제로 일본어를 사용해 볼 기회가 없었기에 '내가 뭘 통역을 할 수 있을까? 흠..곤니찌와! 고레 이쿠라데스카? 정도만 할 줄 알면 될라나..?' 뭐 드라마도 나름 열심히 봤었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일본 현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시내의 싼 게스트하우스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오쿠보(新大久保)의 어느 비지니스 호텔을 숙소로 잡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이 곳이 한국인 유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한인타운이라는 것을 잘 몰랐더랬죠. 신오쿠보에서의 경험이 제게 일본 유학을 하고 싶다는 욕심을 만들어 준 커다란 계기가 되었죠.
설레는 마음으로 일본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맡기고 나오면서 역사적인 일본에서의 첫끼를 어떻게 해결할까? 라며 누나가 무서운 눈으로 식당들의 간판을 스캔하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야, 저기는 무슨 음식점이냐? 야, 여기 뭐 판다고 써있는거냐?" 라는 누나의 쉴 새 없는 물음에 저는 거의 답을 하지 못 하고 대충 둘러대기 바빴습니다. 제가 너무 기초한자를 안 외우고 바로 1급에 도전해서 그런가, 도무지 읽을 수 있는 한자가 없더군요(사실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단어들이 아녔죠). 나의 무능함을 들켜버리고 있어.. 빨리 어디라도 들어가야 돼..라는 초조함이 저를 이끈 곳은 흔하게 있는 규동 체인점이었습니다. 그래 규동은 워낙에 유명하니까 한 번은 먹어봐야지. 나도 분명 티비에서 언젠가 본 적이 있어. 여기라면 문제없어! 당당하게 들어가서 "규동, 후타츠 구다사이!" 를 외치면 되는 거야. 자신감이 다시 쏟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이 산산조각 나는 데 메뉴판을 펼치고 5초가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유는 규동의 종류가 너무나 많아서 당황한 것이.. 첫째였고.. 그림에 치즈 올라가고 김치 올라가고 한 것들은 딱 봐도 뭔지 알겠는데, 예를들어 ネギ玉・かつぶしオクラ・おろしポン酢・ワサビ山かけ 같은 메뉴들은 단어 자체를 모르겠더군요. 그 실력으로 도대체 어떻게 JLPT 1급을 가지고 있었냐고 하신다면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언어를 공부하는 방법이 남들과 많이 달랐던건가..? 추측만 할 뿐이죠. 나중에 유학생활에 대해 이야기 드릴 기회가 있겠습니다만, 저 나름 일본 유학시험(EJU) 일본어 만점자 출신입니다.. 뭐 이것도 어려운 시험은 아니지만, 저희 YMCA잡지에 단독 인터뷰도 실렸었더랬죠).
여러분도 잘 모르는 일본어 단어에 한자가 하나 껴들어가 있으면 이 한자를 어떻게 발음해야 되나..? 2-3가지의 발음 중에 하나일 것 같긴 한데 확실하지 않아서 말하기를 주저하게 되는 경우 있지 않나요? 저는 그런 경향이 강해서요 おろしポン酢 같은.. '오로시퐁...퐁....스??슈?사? 뭐였지?' 이런 각이 나오면 일단 제낍니다. 못 시킵니다. 정확한 발음을 모르기 때문이죠ㅋㅋ;; 물론, 누나가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은 '고레.. 구다사이' 스킬로 잘 시켰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시크한 척 평범한 규동을 시키려고 했는데, 여기에서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스스로 한심해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에서 제가 내심 받은 충격은 여러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일 겁니다.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에..고레토...고노 규동 구다사이..".... 점원 曰 "사이즈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나미로 괜찮으실까요?"
"응...? 나미..?" 저는 그때서야 메뉴판에 사이즈도 고를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응...? 사이즈는 대.중.소만 있는 거 아닌가? 완전 처음 보는 한자가 하나 섞여 있는데..? 並? 뭐라고 읽는 거지?'
점원 曰 "나미로..괜찮을까요..?"
나의 曰 "아..하잇.. 오네가이시마스"
같은 어설픈 대화로 웃어넘겼지만 제 마음은 심하게 동요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런 단어 공부한 기억이 없는데.. 역시 내 일본어 실력은 아직 형편없구나.. 폼 잡는다고 통번역 책 보고 있을게 아녔네.. 뭐지? 내가 이런 체인 음식점에서 주문하나 제대로 못 하는 실력이라고..? 규동을 기다리며 자괴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딱 봐도 한국인 같이 생긴 남자들의 무리가 들어와 저희의 뒤쪽 테이블에 앉더군요. 그들의 대화를 조용히 엿듣고 있자니, 일본에 유학 온 지 이제 갓 한 달이 넘은 친구들이었습니다. 분명 일본어 자체를 많이 알고 있는 친구들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같은 한국인이 봐도 서툰 티가 나는 일본어 발음으로 차분하게 규동 나미셋토를 시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많이 부러웠고 질투를 느꼈습니다.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몇 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본어를 독학해 온 저였습니다.
'나의 이상이 무너진 이 허한 날에, 저들은 단 몇 개월 만에 나의 몇 년을 뛰어넘을 수 있는 환경에 있구나. 아직 초급 일본어 수준의 저 친구들이 내 실력을 뛰어넘는 것은 단순한 시간문제이구나. 이미 난 뒤쳐지기 시작했구나. 나도 일본에 오면 다시 저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이때, 일본 유학을 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태어났던 것 같습니다.
이 여행을 시작으로 더 이어지는 내용들은 다음에 다시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쓸데없이 길어져서;; 진도가 안 나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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